지난 번 글에서 '나'라는 것이 해체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http://goo.gl/NHAA). 글의 말미에 '나'를 허상이 아닐까 했는데 왜 허상이라 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기억할 수 있을만큼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도 과연 '나'라는 것이 존재했는지 기억나시는지요? 저는 물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과학적인 탐구를 통해서나 다른 학문을 통해서 밝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분야도 아니고 그런 탐구 방법이나 진실 해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글의 주제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 라는 중심성(?)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나이를 먹고, 지식 창고가 넓어짐에 따라 '나' 도 같이 굳건해져 왔습니다.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 보면, '나' 라고 인지했던 '그 어떤 시기' 이 전에는 순수한 삶의 본능에 의해서 살았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동물과 같은 상태였겠지요. 배 고프면 먹고, 마시고, 졸리면 자고, 생리적 부름에 응답하는 정말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나'라는 인지가 생기기 시작하면 달라지게 됩니다. 다양한 사회 규범이나 생활 양식, 교육 내용과 수준, 주변 환경 등등에 따라서 조금씩 껍데기가 하나씩 들러 붙게되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껍데기는 점점 두꺼워지고,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나'와 '나를 둘러싼 것'과 다른 것들은 철저하게 배제하기 시작합니다. 소통이 끊긴 상태, 배움이 중단된 상태로 변하는 겁니다. 늙으면 고집만 남는다는 말이 그 말이 아니겠습니까? 이 두꺼워진 껍데기를 뚫고, 인간, 아니 만물의 원래의 모습인 '자연의 진정한 모습'으로 나아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눈사람 만들때를 생각해 보지요.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 뭉치를 만들어야 할 때에는 작은 눈 뭉치을 만든 다음, 눈 밭을 오가면서 그 눈뭉치를 계속해서 굴리면 다른 눈이 붙고, 붙여서 큰 눈 뭉치를 만듭니다. 하지만, 기온이 올라서 그 눈이 녹으면 어떻게 되나요? 결국에는 '눈의 원래 모습인 자연 상태의 물'로 돌아가게 됩니다. 거기에는 '눈'이라는 물의 다른 모습이었던 때의 흔적조차 남지 않습니다. 눈은 물의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눈'의 실제 모습은 '물'일 뿐이요, 물의 다른 이름일 뿐인 것이지요. 하지만, 물이라는 사실은 잊고서 '눈'에 대해서 집착하게 됩니다. 마치 영원할 것 처럼 말이지요.

  이처럼, '나' 라는 두꺼운 껍데기를 하나하나 벗겨내고, 본래의 '나'를 찾아가는 마음 공부를 하다 보면 원래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좀 더 몀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라고 인지했던 모든 것이 '눈'과 같이 실제로는 진리의 다른 형태일 뿐이요, 봄이 오면 없어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덧없이 사라질 '나' 라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고통이고, 무지한 일임을 스스로 깨닫고, 진리(순리)에 맞추어 사는 것이 또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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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공부를 하면서 가끔씩 '나'란 인식이 없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아니, '나'란 인지를 강하게 하는 것의 반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전에는 이 '나=ego'가 사라지는 것이 '나란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만 이것 또한 실상이 아니었음을 눈치챘지요. 그 이 후에도 가끔씩은
'나'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 지내오다가 문득 연말에 받았던 크리스마스 케익을
계기로 해서 '나눔' 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눔'이란 것이 '내가 가진 것을 나눈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아니란 것을 안 것입니다. '나눔' 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게 아니고
'나'가 사라지고 남는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나의 중심을 벗어난
'우리'로 향하는 것. 그것이 진실한 '나눔'입니다.

   '나=ego'가 사라짐으로써 외부로 나타나는 것이 나눔이라면
 내면에서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고 잘 바라보았더니
그것은 바로 '진리'였습니다. 자아를 찾는 분도 계시지만 '나' 자체가 허상일지니
그것이 사라져서 나타나는 것이 '또 다른 나' 일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나' 는 '나의 의지' 로는 결코 없애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기를 간구하는 것이겠지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해를 돌아보면 역시나 여기 저기 '불통'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용산 참사',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 시도', '4대강 사업 추진','무상 급식 예산 삭감' 등등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여기 저기서 아픔이 느껴진 한 해였습니다.

  2010년에는 이런 '불통'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소통'의 시대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대화'가 무엇이고 '소통'이 무엇이라고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대화' 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내' 가 '다르지만 또 같다' 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바탕에서 서로의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대화를 하는 목적을 바라보는 상대방과 나의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고,
'같다'는 것은 서로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대화 상대의 이익을 좀 더 가져오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극한으로 가는 것이 바로 '경쟁'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쟁'으로는 서로가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나눔'. 이것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길입니다.한정되어 있는 자원을 지혜롭게 나눔으로써 우리 모두가 같이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누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대화를 하고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하겠습니다.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이미 내린 결론을 들이밀면서 동의하라는 식의 대화 는 지양해야 하는 '폭력'입니다. 그것이 폭력이란 사실 조차 모르는 분들이 많으셔서 안타깝습니다. '좋은일인데 왜 동의하지 않느냐?' 는 식의 반론을 하는 분들을 보시면 서글퍼집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이가 먹어도 조금도 어른이 되지 않는 분들입니다.

  우리 모두 조금 더 성숙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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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화,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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